올해 여름 날씨는 ‘삼복염천’(三伏炎天)을 실감할 정도로 뜨겁고 무더웠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다 보면 어릴 적 시골집 마루에 걸려 있던 대나무발이 떠오르는 분이 많을 것이다. 뜨거운 햇볕은 가려 주고 시원한 바람은 통하게 하던 대나무발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 주곤 했다. 그런데 대나무발이 한 세기 전 미국 하와이에서 조국 광복의 염원을 담은 발명품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권도인(1888~1962·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은 이역만리 하와이에서 햇볕과 바람이 강한 현지 기후에 맞춰 조선의 대나무발을 서양식 커튼과 접목시킨 ‘대나무 커튼’을 발명해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고 1941년 등록을 받았다. 이 발명품은 미주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며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고 수익금은 고스란히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 이국땅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그의 마음속엔 오직 조국 광복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이 가득했다.
권도인 선생 외에도 많은 발명가가 발명을 통해 독립의 꿈을 이어 갔다. 1909년 말총모자를 발명해 한국인 최초로 특허권을 얻은 정인호(1869~1945·건국훈장 애국장) 선생은 그 수익을 상하이 임시정부 군자금으로 지원했다. 저술 활동을 통해 독립 의지를 다진 장연송(1901~1956·건국포장) 선생은 다기능 지팡이 등의 발명품을 해외에 특허출원해 조선인의 창의성을 세계에 알렸다. 강영승(1888~1987·건국훈장 애국장) 선생은 쌀엿 사탕을 발명해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올해는 광복 80년이자 발명의날 6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다. 지난 5월 19일 열린 제60회 발명의날 기념식은 어느 해 보다 의미 있는 행사였다. 권도인 선생의 외손자가 특별히 하와이에서 참석해 대전현충원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고 선조들의 발명과 애국정신을 기렸다. 이어 발명의 날 기념식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립운동 발명가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독립과 발명’ 기획전이 지금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광주과학관, 정부대전청사 발명인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선조들의 발명품에 담긴 독립을 향한 열망과 창의 정신은 깊은 울림과 새로운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발명으로 조국 독립의 길을 개척했던 선조들의 혜안은 기술이 국력을 좌우하는 지금 더욱 절실한 의미로 다가온다. 새 정부가 ‘다시 힘차게 성장하는 나라’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창의성과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것도 맥을 같이한다. 발명은 이 비전을 현실로 구현하는 강력한 도구다. 발명가 개개인의 상상과 도전이 모여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며,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발명과 특허가 선조들에게 조국 독립을 위한 디딤돌이었다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속 발전을 가능케 하는 ‘엔진’이다.
대나무발을 통해 들어온 시원한 바람이 무더위를 잊게 했듯 권도인 선생의 대나무 커튼에는 당시 답답한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간절한 꿈과 창의적 실천 의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광복 80년과 발명의 날 6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 또 다른 대나무 커튼을 만들어야 한다. 특허청은 그 숭고한 유산 위에서 발명과 혁신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는 지식재산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